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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군고창동학농민혁명

임실

백산봉기 집결지

백산봉기 집결지

임실군 운암면 지천리
3월봉기 당시 임실의 대접주는 최봉성이었다. 그러나 그는 연로한 탓으로 행동에 직접 나서지 않았고, 그의 아들(승우)과 사위(김홍기)에게 명하여 봉기를 지도하였다. 최승우는 운암면 지천리에서, 김홍기는 둔덕면 둔기리(현 오수면 오수리)에서 각각 봉기하였다. 이들은 이후 남원성을 점령하는 등 남원일대의 농민군 활동을 주도해갔다.

김영원 생가터

김영원 생가 터

임실군 운암면 선거리 시목동마을
김영원은 그의 할아버지가 진사과에 합격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유학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20대 중반에 칠보의 무성서원 색장과 장의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그는 과거에 실패하자 삼요정에서 많은 후학을 배출하였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3.1만세운동의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박준승, 양한묵 등이 있다. 1880년대 후반 동학에 입도한 그는 동학농민혁명이 발생하자 동학의 접주로 임실의 농민군을 이끌었다. 남원성 패배 후 최승우 등과 함께 순창 회문산으로 피신하였다가 돌아온 그는 임실지역 3.1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동료인 최승우, 한영태와 함께 옥사하였다.

최시형 은신지

최시형 은신지

임실군 청웅면 조항리 새목치
2차 농민봉기 당시 동학 2대 교주인 최시형은 1894년 11월 초순 청웅면 조항리의 교인 허선의 집으로 들어가 12월 초순까지 머물렀다. 이곳에서 우금치전투 이후 후퇴하던 손병희와 만나 충청지역으로 도피하였다. 손병희는 2차 농민봉기 이후 농민군이 격전을 벌이던 시기의 대부분을 이곳에 머물며 상황변화를 살폈다.

갑오동학농민혁명 기념비

갑오동학농민혁명 기념비

임실군 운암면 쌍암리 상운마을 운암초등학교 앞
운암초등학교 앞에는 세 개의 기념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갑오동학혁명 기념비, 기미삼일운동 기념비, 무인멸왜운동 기념비가 그것이다. 이 기념비들은 임실지역 주민들이 1983년 함께 세운 것이다. 이처럼 성격이 서로 다른 기념비가 함께 세워져 있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최봉성, 최승우, 김영원, 한영태 등 동학농민혁명 지도자들은 동학농민혁명이 발생하자 임실일대에서 봉기하여 남원으로 나아가 줄곧 활동하였다. 그러나 11월말 남원성전투 패전 뒤, 임실로 돌아온 농민군 지도자들은 순창의 회문산으로 피신하여 세력을 보존할 수 있었다. 6년 뒤 임실로 돌아온 동학농민군 지도자들은 동학 재건에 성공하여, 순창, 진안 등지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이들과 그의 제자들은 재건한 세력을 기반으로 동학교단(후의 천도교)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특히 김영원의 제자인 박준승은 3.1만세운동의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명으로 참여하는 등 3.1운동과 1928년 멸왜운동을 어느 지역보다 활발히 펼쳤다. 3대 기념비는 이러한 일련의 운동과 그 운동의 지도자를 기념하여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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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9-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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