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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서산 동학농민혁명 역사

해미읍성

서산 지역에 동학이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1894년 동학 농민전쟁이 발발하기 몇 년 전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서산·태안 지역을 포함하여 충청남도 서북부 지역에 동학이 급속하게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1907년에 천도교의 제4대 교주로서 활약한 덕산 출신의 박인호(朴寅浩) 때문이었다. 박인호 등 초기 지도자들이 1890년에 들어 서산 지역을 포함한 충청남도 서북부 지역에서 포교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한 결과 많은 신도를 포섭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1894년 5월경에는 마을마다 포 조직이 만들어지고 매일 밤 동학 주문을 외우는 소리가 곳곳에 울려 퍼졌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하자 지방 수령이나 사족들은 농민 수탈, 특히 동학 교도들에 대한 억압을 더욱 강화하였다. 내포 지역의 동학 농민 전쟁에는 충청남도 서북부 지역의 농민이나 동학 교도들이 고루 참여하였다. 그러나 최초로 중심 대오가 결성되고 마지막 전투가 벌어진 것도 해미와 서산이었다. 이는 당시 내포 농민군의 주력이 서산·태안 지역의 농민들이었다는 근거이다.
패전 이후 농민 전쟁에 참여했던 서산·태안 지역의 농민들은 고향을 버리고 뱃길로 인천 지역이나 황해도 지역으로 이주하였으며, 고향에 그대로 남았던 사람들은 일제 강점기 천도교 교도로서 동학 정신을 계승하여 지역 사회 운동의 발전에 여러모로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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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9-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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