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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홍주읍성(사적 제0231호)

홍주읍성

충남 홍성군에 있는 성으로, 길이 약 1,772m의 성벽 중 약 800m의 돌로 쌓은 성벽의 일부분이 남아있다. 처음 지어진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 홍주성의 둘레와 여름과 겨울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하나 있다는 기록만 있을 뿐이다. 왜구의 침입이 예상되는 고을의 읍성을 새로운 격식에 맞추어 쌓게 되었던 조선 세종 때에 처음 쌓기 시작하여 문종 1년(1451)에 새로 고쳐 쌓았다. 당시 성의 규모는 둘레가 4,856척(약 1.5㎞), 높이는 11척(약 3.3m)이며 문은 4개가 있었고, 여장·적대 등의 여러 시설이 설치되었으며 안에는 우물 2개가 있었다고 한다. 동문인 조양문은 현재까지 남아있고 1975년 복원한 것이다. 아문은 조양문의 문루를 설치할 때 함께 세운 것이며 ‘홍주아문’이란 글씨는 흥선대원군이 직접 썼으나 현재 남아있지 않다. 우리나라 아문 중에서 가장 크고 특이한 형태를 지니며 조선시대 관아의 구조와 형태를 살필 수 있는 자료가 된다. 또 동학농민혁명의 격전지이며 의병활동이 뜨거웠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덕산을 공격한 동학농민군은 내처 홍주성까지 점령하려 하였으나, 일본군 장교 아카마쓰가 이끄는 일본군의 저항을 이기지 못하고 해미로 물러나고 말았다. 김좌진 장군의 고향이기도 한 홍주는 민종식, 이세영, 채광묵, 안병찬 등의 의병의 활동으로 이름난 고장이다.
1895년에 일어난 의병은 관찰사 이승우(농민군과 싸웠던 홍주목사)의 배신으로 실패했으나, 1906년에는 의병이 크게 일어나 홍주성을 점령하기도 했다. 조양문에는 당시 의병과 관군이 격전을 벌인 총탄자국이 남아 있다. 그리고 이 곳은 삼국시대 이래 조선시대까지 읍터로서 크게 변동이 없었다는 점과 내포평야를 끼고 있어 시대적으로 많은 사연을 갖는다는 점, 조선 초 새로운 축성법에 의한 축성물이 현존한다는 점에서 보존의 가치와 축성법 연구에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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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9-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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