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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 각지의 척왜 봉기

6월 21일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이후에도 전봉준 등 주력 농민군은 타협적인 집강소체제를 성립시키고 그 체제를 유지하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이와 달리 전라, 충청, 경상도의 여러 지역에서는 일본의 침략에 항거하는 척왜 봉기가 그치지 않고 일어났다.

경복궁이 점령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호남 각지에서는 즉각 척왜 봉기가 일어났다. 6월 27일 함열의 농민군이 금구, 김제, 옥구 등지의 농민군과 함께 재봉기하였고, 6월 29일 무장의 농민군 500~600명이 봉기하였다. 6월말 경에는 강경 일대에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농민군이 봉기하였고, 7월 초순 함열,웅포의 농민군 300여명이 봉기하였다. 7월 9일 부안 농민군이 충청도 서천관아에 돌입하여 무기를 빼앗아 돌아갔다. 그리하여 농민봉기는 7,8월부터는 삼남전체로 퍼져 나갔다. 특히 청,일전쟁 과정에 일본의 내정간섭과 인적, 물적 자원의 징발이 심해지면서 봉기는 크게 확대되었다. 이 무렵 충청도와 경상도 일대에서 일어난 농민봉기의 사례를 보자. 7월 6일 충청도 노성, 7월 12일 경상도 대구, 7월 14일 경상도 곤양, 7월 17일 충청도 연기, 한산, 7월말 경상도 고성, 7월 28일 경상도 사천, 8월 1일 공주, 8월 2일 경상도 산청, 10일 영천, 20일 울산, 언양, 김해, 8월 중순 문경일대, 8월 12일 천안, 8월 21일 충청도 충주, 8월 24일 경상도 안동, 29일 경상도 문경에서 봉기하였다.

이처럼 7~8월 사이 삼남 각지에서는 척왜봉기와 더불어 폐정의 교정을 요구하는 봉기가 잇따라 일어났다. 이들 봉기의 대부분은 척왜와 폐정개혁을 동시에 수행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7~8월 삼남일대의 봉기는, 전봉준을 중심으로 한 주력 농민군이 상황 주시에 힘을 기울일 때, 이에 적극 따르지 않는 일부 지역의 농민군이 그 지역 지도자의 지휘 아래 봉기한 것이다. 또한 3월 봉기에 참여하지 않았던 각 지역의 농민들이 주력 농민군의 동향에 관계없이 일본군의 침략에 반발하며 봉기한 것이다. 이런 각지의 척왜 봉기는 주력 농민군의 진로에 큰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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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9-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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