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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탐방 감상문(고창북고-장은주)

  • 작성자 : 동학관리자
  • 작성일 : 2016.05.23
  • 조회수 : 110

감상문

고창북고등학교 2학년 2반 장은주

 

 

때는 아침 나는 부스스한 눈으로 일어나 아침을 먹고 교실에 가서 앉아 있었다. 오늘 1교시가 뭐지 하는 생각에 문득 스치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오늘은 체험학습 가는 날이라는 생각이 막 떠올랐다. 설레는 마음을 가슴에 안고 나는 신발장 안에 있는 내 신발을 찾아서 발에 끼워 맞췄다. 아침 830분에 나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안전 교육을 받은 뒤 출발했다. 30분쯤 달려 도착한곳은 전봉준이 포고문을 외쳤다는 비석 이었다. 그 다음으로 동학농민운동 홍보관에 도착했다. 나는 160년 전 동학농민 운동의 발단과 전개를 실감 했으며 멋진 전봉준 장군님의 그림도 보고 설명은 없었지만 되게 색다른 경험 이였다. 그런 다음에 나는 무장 읍성에 내려 읍성 안에 있는 관아로 걸어갔다. 따가운 태양이 있어 조금은 더웠지만 고창읍성보다 35년 앞서서 만들어 졌다는 애기를 듣고 내가 고창에서 모르는 성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런 다음 우리는 무장 읍성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고창읍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1시에 다시 버스에 올랐다. 그 후에 나는 스르륵 잠이 들었고, 차는 얼마가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정읍에 있는 동학농민혁명 기념관에 도착하며 입구에 들어섰다. 들어가자마자 내 눈에 뜨인 것은 웅장함 거창스러운 것이 아닌 소소하고 단아하며 근엄하고, 진지한 나무 한그루가 어서오라는 듯한 기분으로 반겼다. 그 모습을 골똘히 쳐다보다가 동학농민운동에 참전하신분의 후예이신 강사분이 오셔서 사실 동학 농민운동으로 전사하신 분들이나 참전하신분들의 후예로 인정받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하셨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증거가 있어야 되는데 그런 사람이 한국에 500명도 안 되는 498명 정도만이 증거가 있어서 후예로 인정받고 있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 나는 1층에서 강사 선생님을 따라 동학 농민운동의 주요 인물들의 사진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책에서 보던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으신 분들도 있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사진 하나하나 전부다 인물들이 초췌하냐고 강사선생님에게 여쭤 봤더니 전쟁으로 힘들어 하는 모습이 아닌 역적으로 몰려 고문을 받은 후 찍은 사진이라고 말씀해 주시자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마치 시계추처럼 내 발밑부터 목 끝까지 차올랐다. 자유, 이 한 단어는 참으로 많은 영화 책 역사 등에 단골로 나오면서 나의 마음을 괴롭히는 녀석들 중 하나이다. 그만큼 자유를 억압당한 채 살아갔던 농민들의 마음이 여기까지 전해지는 듯했다. 그 다음으로 조총을 들고 있는 농민의 인형과 그걸 지나쳐서 벽에 특이하게 보이는 글귀 하나가 있었다. ‘일어서면 백산 앉으면 죽산이 글귀는 무엇을 의미 하나 했더니 농민들의 하얀 옷이 일어서면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산이 하얗게 보이고 앉으면 그 농민들이 하나씩 쥐고 있던 죽창 들이 나와서 대나무 산을 이룬다고 해서 나온 말이라고 설명해주시자 모호한 글귀는 재치 있는 언어유희가 되는 것을 보면서 흥미를 얻었다. 그 다음으로 현군을 이긴 엄청난 지혜의 산물인 계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계장은 현군이 대포를 들고 쳐들어 왔을 때 크게 만들어서 짚을 넣은 다음 대포를 막아 계속 굴려서 산을 올라 현군을 이겼다는 말을 듣고 나는 선조의 지혜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이렇게 재치 있는 말과 지혜로운 발상이 있는데 왜 등용하지 않았을까, 나는 의구심이 들었다. 왜 이런 인재들을 놔두고 부패한 양반들의 자식들만 독점하듯이 가지는지 나는 정말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리 돈이 좋아도 농민이나 국민들이 없으면 나라가 망하는 건 순식간인데 그걸 생각하지 못하는 미련한 양반들이 나는 정말 싫었다. 그걸 뒤로 하고 나는 마패 등 여러 가지 유물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와 마지막으로 나는 전봉준의 고택에 들렀다. 마지막 설명을 다 듣고 우리학교 원어민 선생님인 브라이언의 감상평을 들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브라이언은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에게 가르침을 줄뿐만 아니라 가르침을 받기도 한다는 생각을 하자 나도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중국이라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 나라의 문화나 역사 유적지를 탐방하고 싶은 꿈이 생겼다. 그리고 학교에 돌아와서 나는 휴식을 취했고 그날 밤은 잠이 아주 잘 오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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