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덕면]강선교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4.02.26
- 조회수 : 1727
흥덕면은 지금은 비록 면소재지에 불과하지만 옛날에는 고창지방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로서 유적이나 사적이 많기로 유명하다.
특히 이곳이 유명한 것은 고려 때 강감찬 장군이 현감으로 왔던 일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 흥덕에서 서해안을 향해 십리쯤 가다 보면 남서쪽으로 흘러 내리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냇물이 있고
이 냇물을 가로질러 놓여진 다리가 하나 있다.
이 다리에 얽힌 이야기는 이 지방 사람들의 마을속에 아직도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다.
까마득히 먼 옛날부터 이곳은 해마다 물날리로 큰 피해를 입고 있었다.
사람이 떠내려가고 논이나 밭이 물에 씻기고 집이 가라앉아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 이런 재난을 막아야 한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고 그저 하늘만 쳐다보고 한숨만 쉬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 재난을 막겠다고 나선 한 사람이 있었다. 강선이라는 기생이었다. 동네 사람은 깜짝 놀랐다.
남자들도 감히 나서지 못하고 있는데 나이 어린 기생이 재난을 막아야 한다고 나섰으니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강선은 본래 훌륭한 집안의 외동딸이었으나 집안이 몰락하는 바람에 기생이 된 것이다.
강선은 입을 것 입지 않고, 먹을 것 먹지 않고 번 돈을 몽땅 털어 다리를 놓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둑을 쌓고 다리를 놓는다는 것은 여간 힘들지 않았다.
돈이 엄청나게 들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가냘픈 여자의 힘으로는 벅찬 일이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사람들은 또 한번 놀라고 말았다.
이때는 이조 성종 때 일이었으므로 농사에 도움이 되는 일은 관청에서 많은 협조를 하였다.
성종은 농사를 나라 일의 으뜸으로 삼았기 때문에 저수지를 만들거나 둑을 쌓는 일에는 온 힘을 쏟았다.
이런 때였으므로 강선이 하는 일에 관청에서 발벗고 나선 것이다. 빈둥거리던 마을 사람들도 앞을 다투어 둑을 쌓고 다리를 놓는 일에 나섰다.
몇 달이 지나 다리 공사는 끝이 났고, 마을 사람들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기뻤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강선의 거룩한 뜻을 길이 새기기 위하여 다리의 이름을 강선교라고 했다.
특히 이곳이 유명한 것은 고려 때 강감찬 장군이 현감으로 왔던 일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 흥덕에서 서해안을 향해 십리쯤 가다 보면 남서쪽으로 흘러 내리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냇물이 있고
이 냇물을 가로질러 놓여진 다리가 하나 있다.
이 다리에 얽힌 이야기는 이 지방 사람들의 마을속에 아직도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다.
까마득히 먼 옛날부터 이곳은 해마다 물날리로 큰 피해를 입고 있었다.
사람이 떠내려가고 논이나 밭이 물에 씻기고 집이 가라앉아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 이런 재난을 막아야 한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고 그저 하늘만 쳐다보고 한숨만 쉬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 재난을 막겠다고 나선 한 사람이 있었다. 강선이라는 기생이었다. 동네 사람은 깜짝 놀랐다.
남자들도 감히 나서지 못하고 있는데 나이 어린 기생이 재난을 막아야 한다고 나섰으니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강선은 본래 훌륭한 집안의 외동딸이었으나 집안이 몰락하는 바람에 기생이 된 것이다.
강선은 입을 것 입지 않고, 먹을 것 먹지 않고 번 돈을 몽땅 털어 다리를 놓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둑을 쌓고 다리를 놓는다는 것은 여간 힘들지 않았다.
돈이 엄청나게 들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가냘픈 여자의 힘으로는 벅찬 일이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사람들은 또 한번 놀라고 말았다.
이때는 이조 성종 때 일이었으므로 농사에 도움이 되는 일은 관청에서 많은 협조를 하였다.
성종은 농사를 나라 일의 으뜸으로 삼았기 때문에 저수지를 만들거나 둑을 쌓는 일에는 온 힘을 쏟았다.
이런 때였으므로 강선이 하는 일에 관청에서 발벗고 나선 것이다. 빈둥거리던 마을 사람들도 앞을 다투어 둑을 쌓고 다리를 놓는 일에 나섰다.
몇 달이 지나 다리 공사는 끝이 났고, 마을 사람들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기뻤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강선의 거룩한 뜻을 길이 새기기 위하여 다리의 이름을 강선교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