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송면]이씨 조선의 역사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4.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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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조가 지내고 이조 때 아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앉어 가지고 서울와서 도읍을 했거든. 도읍지를 서울에다 잡었는디, 아 궁궐을 지어 놓으먼 자꾸 씌러져(쓰러져) 싸 근게 무아기를 데릿고 그 서울 터를 잡았는디, 그 무아기가 이상허단 말여. 저리 이만큼 나가서 간게 어떤 농부가 소가지고 쟁기를 터는디, 해길. \"야 이놈의 소새끼야, 무아, 무아기 같이 미련헌 소새끼가 어디가 있냐고\" 아 근게, 무아기가 인자 가만히 가서, \"예, 선생님, 선생님이라니 어쩌 어쩌서 무아기가 미련허다우\" \"아, 서울 터는 학턴디, 사대문을 학의 어깨를 딱 눌러 놓고 궁궐을 지야헌디, 지긴 지는디 날개 치먼 자프라 지는 것 아니냐\"고 말야. 그서 그때에 동대문, 서대문 짓고 나서 부텀은 지금 서울이 말로먼거 궁실이 안 넘어 지는디, 에- 무아기가 서울 터를 잡을 때, 에- 그 비원에 가먼 창엽이라고 크게 써 있어. 창엽이라고 써 있는 것은 에-푸를 창자가 에- 초우두 밑이 야답팔(八)허고 야답팔허고 임금군 혔거든. 이십팔대군에 가서는 끝난다. 응. 이씨가 끝난다. 근게 잎엽자는 초두밑에 세상세허고 나무목을 혔거든. 거그 또 이십팔대가 나와 버렸음. 비원에 가먼 그것이 있는디 근게 무아기 같은 이는 확실히 이그 지리 박사제잉. 음 지금도 비원에가먼 그 창립이라고 근게 이씨 조선이 이성계 이하 이십팔 대손에 가소 딱 끝났다고. 그서 그리서 에- 말허자먼 에- 융희 사년에 이화락이요(사융 칠월에 이화락이요) 응, 이화락이요. (사융 칠월에 이롸락이요;융희 사년 칠월에 이화 꽃이 떨어지고) 응, 그 왜 육대궐 해운기라고 혔는디 말여. 그것을 마치덜 못헌다 그말여. 그런 역사가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