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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제우최제우

동학은 1860년(철종 11) 최제우(崔濟愚)에 의해 창도된 조선 후기의 대표적 신흥 종교이다.
당시 조선은 정치적으로 세도정치와 과거제도의 문란과 서구 제국주의 열강(列强:여러 강한 나라)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었고, 사회경제적으로는 가톨릭교를 위시한 서학(西學)이 번성하였으며, 수취제도의 문란과 지방수령의 가혹한 수탈로 민중들의 위기의식이 고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제우는 새로운 도(道)를 구하고자 하였다. 동학은 보국안민(輔國安民: 나랏일을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함) 의식과 시천주, 인내천의 사상과 교리를 두 가지 큰 산맥으로 한 반봉건적, 반침략적 성격이 짙은 민중 기반적 구원의 종교였다. 특히, 동학은 그 시대 우리나라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 여러 가지 모순을 과감히 개혁, 변혁시켜 지상의 복락과 인류 평화에 기여해야 한다는 민족관을 내세워 민중의 압도적인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동학은 양반사회의 해체기에 농민대중의 종교가 되면서 반왕조적인 사회개혁운동 성격을 띠었고,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하였으며, 그 뒤 3.1운동에서 나타난 민족주의 역량을 키우는 등 한국 근대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창도와 조직

최제우는 구세제민(救世濟民: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고 고통받는 민중을 구제함)의 큰 뜻을 품고 양산군 천성산(千聖山) 내원암(內院庵)과 내원암의 적멸굴(寂滅窟)에서 49일간의 기도를 끝내고, 다시 고향인 경주로 돌아와 용담정(龍潭亭)에서 수도를 계속하던 중, 1860년 4월 ‘한울님’의 계시를 받게 되었고, ‘동학’이라는 대도(大道)를 깨닫게 되었다. 최제우가 한울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는 동학의 교명(敎名)과 영부(靈符), 그리고 주문(呪文)이라 한다. 동학이란 곧 서학에 대응할 만한 것으로 동토(東土)인 한국의 종교를 의미하며, 그 사상의 기본은 종래의 풍수사상과 유(儒).불(佛).선(仙:道敎)의 교리를 토대로 하여, ‘인내천(人乃天) 천심즉인심(天心卽人心)’의 사상에 두고 있다. 영부란 백지(白紙)에 한울님의 계시에 따라 그린 일종의 부적(符籍)으로, 궁을형(弓乙形)으로 되어 있다.

주문은 13자로 된 본주(本呪)와 8자로 된 강령주(降靈呪) 등이 있다. 한편, 동학은 신분.적서(嫡庶)제도 등에도 반기를 들어 이를 비판하였으므로, 그 대중적이고 현실적인 교리는 당시 사회적 불안과 질병이 크게 유행하던 삼남지방에서 신속히 전파되었다. 포교를 시작한 지 불과 3~4년 사이에 교세는 경상도.충청도.전라도지방으로 확산되었으며, 이에 조정에서는 동학도 서학과 마찬가지로 불온한 사상적 집단이며 민심을 현혹시키는 또 하나의 사교(邪敎:사회에 해로운 작용을 하는 그릇된 종교)라고 단정하고 탄압을 가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1863년에는 최제우를 비롯한 20여 명의 동학교도들이 혹세무민(惑世誣民:세상 사람을 미혹하게 하여 속임)의 죄로 체포되어, 최제우는 이듬해 대구에서 사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동학을 포교한 후 교세가 확장되자 접주(接主)제도를 만들었는데, 이 접주제도는 각 지방에 포교소로서 접소(接所)를 두고 그 접소에 접주(接主)를 두었다.

접주에게는 그 지방 교인들의 관할과 강도(講道), 새로운 교인의 포교활동을 담당하게 하였고, 접주 위에는 도주(道主)를 두어 접주를 통솔하도록 하였다. 한편, 최제우의 뒤를 이은 최시형(崔時亨)은 접주제도를 확대 개편하여, 교인들의 일단(一團)을 포(包)라하고 여기에 포주(包主)를 두었다. 포주 위에 접주.대접주, 그 위에 도주.대도주를 두었다. 중앙에는 법소(法所), 지방에는 도소(都所)를 두기도 하였는데, 접주의 자격은 포덕실적(布德實績)에 의한 정수제(定數制)로 하였다. 즉 105명 이상 포교한 사람을 접주, 500명 이상 포교한 사람을 대접주로 하였다. 대도주는 성(誠).경(敬).신(信).법(法)의 4자를 이름하여 4명이 있었다.

경전

동학경전은 최제우가 직접 지은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용담유사(龍潭遺詞)’가 있다. 동경대전은 최제우의 도에 대한 가르침이나 종교적 수행을 담은 경편 등과 많은 시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동학의 요체와 천도를 밝힌 글이다. 동경대전의 내용은 포덕문, 논학문, 수덕문, 불연기연의 4편과 주문, 팔절 등 각종 시구들로 순한문본으로 되어 있으며, 용담유사는 가사체의 형식으로 동학의 교의를 보다 보편적으로 폭넓게 접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최제우의 가르침을 노래로 지은 것이다. 용담유사의 내용은 교훈가, 안심가 등의 8편과 부록으로 검결이 있으며 순 한글로 되어 있다.

기본교리

(1) 한울님관

신에 대한 관념은 유신론적 입장과 범신론적 입장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동학의 한울님관은 유신론적인 입장에서 보는 초월적(超越的)인 신, 범신론적 입장에서 보는 내재적(內在的)인 신이라는 관념을 반대 일치의 변증법적 논리로써 동시에 포용하고 있다. 즉 한울님은 창조주이면서도 만물 속에 계시면서 모든 일을 간섭하고 명령하시는 무형의 이치 기운이며, 대우주의 대정신, 대생명이 되는 것이다.

(2) 후천개벽관

최제우는 한글경전 ‘용담유사’에서 인류 역사를 크게 두 시대로 구분하여, 창도 후의 새 시대를 후천(後天)이라고 하고, 구시대를 선천(先天)이라고 하였다. 후천개벽은 선천운수(先天運數)가 지나고 후천운수(後天運數)가 열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후천운수는 5만 년이며, 공간적으로는 인간생활의 전면적 변혁이 시작될 때라 한다. 선천시대의 종교란 천계(天界)의 한울님을 순종하며 천상의 극락을 누리려 하는데에 그 목적이 있었지만, 후천시대의 종교는 인계(人界)에서 한울님을 모시는 지상극락을 누리게 된다고 한다. 또 선천시대는 존비귀천(尊卑貴賤)의 계급주의이지만, 후천시대는 평등주의를 원칙으로 하며, 이에 따라 정치.사회의 제도까지 바뀌어 국기(國基)가 바로 서고, 모든 사회의 불안이 제거되는 지상극락의 이상사회가 이룩된다고 한다. 그는 지금까지의 혼란한 시대가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종말론(終末論)을 주창하면서도 다가오는 새 시대야말로 이상시대가 될 것이라는 낙관적 종말론을 주창했다. 최제우 자신이 확립한 동학사상이야말로 오만 년 동안 지속되어온 지금까지의 문명을 해체시키고 다시 오만년 동안 지속될 새로운 문명을 열기 위한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무극대도(無極大道:우주 본체인 무극의 신령스러운 능력)라고 천명한다.

(3) 시천주(侍天主)와 인내천(人乃天)

동학은 사람을 시천주(侍天主)의 존재로 본다. 시천주란 글자 그대로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뜻으로, 모든 사람은 한울님을 모시고 있음으로써 살아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신령한 한울님 마음을 가지고 있고, 이 한울님 마음이 우주에 가득 차 있는 한울님 기운과 끊임없이 기화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 사람의 형체라고 말한다. 결국 시천주(侍天主)의 인간관은 사람에게 있어 정신이나 육신은 모두 한울님 마음과 한울님 기운을 모시고 있는 존재라는 앎에서 비롯된다. 또한, 사람은 한울님을 모신 존재이기 때문에 평등하면서도 존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간관에 의하여 ‘사인여천(事人如天:사람을 하늘처럼 섬긴다)’, ‘인내천(人乃天)’ 등의 사상도 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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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9-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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