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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군고창동학농민혁명

학생유적지 답사 감상문-박수빈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3.12.18
  • 조회수 : 335
“고창 동학농민혁명의 발자취를 체험하다”
 
2013년 11월 20일
고창북고등학교 1105 박수빈
 

고창지역은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된 곳일 뿐 아니라, 혁명의 불씨가 끊임없이 살아 피어나도록 한 보금자리로써
그 무한한 역사적 가치가 내재되어 있는 만큼 매우 소중한 지역자원이다.
하지만 우리는 고창을 그저 ‘학교와 집이 있는 곳’이라고 의미를 부여해버린다.
이런 우리의 부족한 역사의식을 타오르게 하고, 적어도 ‘우리가 사는 곳에 이런 위대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었구나’
라는 생각이라도 가지게 해주기 위함이 우리 1학년 모두가 이 체험에 참가하게 된 의의이다.
 
나는 몇 달 전 이런 비슷한 동학농민 역사캠프를 체험하고 온 적이 있었다.
2박 3일의 짧지 않은 일정으로 많은 것을 배웠었는데 그 때는 전주, 정읍, 공주 등등
고창 외에 다른 많은 곳을 보느라 고창의 동학농민운동에 대해 구체적으로 배우지 못 했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복원중인 무장 읍성과 무장동학도 포고문이 있는 무장기포지 등
캠프에서 가보지 못했던 것들도 볼 수 있었다.
한 곳, 두 곳 돌아다니면서 배우다보니 녹두장군인 전봉준 장군이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키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리더십으로 여러 사람을 이끌고 현명하게 이 운동을 지휘했기 때문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장과 전주를 점령할 당시 무혈입성을 한 것이다.
무혈입성이란 누군가를 죽이거나 상처를 입히는 것 없이 입성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의를 들어 여기에 이르렀음은 그 본의가 결코 다른데 있지 않고
창생을 도탄 중에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 위에 두고자 함이라.
안으로는 탐학한 관리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는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쫓아 내몰고자 함이라.
양반과 부호 앞에서 고통을 받는 민중들과 방백과 수령의 밑에서 굴욕을 받고 있는 힘없는 향리들은
우리와 같이 원한이 깊은 자이라. 조금도 주저하지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만일 기회를 잃으면 후회하여도 돌이키지 못하리라.’
이 격문은 동학혁명 백산 창의비에서 전봉준이 읊은 창의문으로 죽창을 든 농민군들의 시기를 더욱 높인 원인이 되었는데
당시에 백산은 흰 옷을 입은 농민군들로 뒤덮여 ‘앉으면 죽산이요, 서면 백산이라’ 라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우리 민족이 자발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일어서는 시위운동이 동학농민혁명으로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인내천 사상, 만민평등 사상이라는 당시의 사회에선 상당히 충격적이었을 것인데
그 사상들을 받아들인 농민군들을 보면 당시에 경제가 상당히 안 좋았던 것 같다.
여하튼 동학 덕분에 우리가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번 체험은 유익하고 좋았지만 설명이 좀 아쉬웠던 감이 있었다.
퀴즈 중심으로 설명을 해주시다보니 겉핥기만 하고 만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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