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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알유희/ 헤르만 헤세/ 범우/2021

  • 작성자 : 김**
  • 작성일 : 2023.04.05
  • 조회수 : 18

<유리알유희 소감문>

어린시절 수레바퀴아래서와 데미안으로 시작한 헤르만 헤세의 작품에 대한 갈증은 세월의 저편에 아직까지도 남겨져 있었다. 그리하여 데미안을 다시 구입하여 읽게 되었는데, 이것은 표면적으로 아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것인가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지만, 사실 오랜 기억속에 희미해진 싱클레어의 행적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선과 악의 문제에 심취했던 고등학교 시절에 보았던 데미안속 천사와 악마의 현신인 아브라삭스를 찾았고, 신에 대한 갈망과 질서에 대한 반항으로 상처를 안고 사는 카인의 단면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이후 도서관 서가에 꽂힌 ‘나비’라는 책을 발견하고는 다시 헤세에 대한 그리움을 인정하게 되었다. 나비는 최근에 ‘읽은 꽃들에게 희망을’ 이란 책에서, 그리고 장자의 꿈에서 철학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대변해준다고 보았는데, 헤세의 나비는 가볍고, 화려하고, 희귀함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 속에서도 나에게는 장자의 나비가 오버랩되었다. 결국 헤세의 유명작인 유리알유희라는 책을 읽기로 작정하고 책을 펼쳐 들게 되었다.

유리알유희가 대체 뭐지? 라는 생각이 책의 끝자락까지 남겨져 있다. 그리하여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하였는데, 아직까지도 명확한 실체는 알지 못하겠다. 그저 형태적으로 나비같은 형형색색의 유리알을 철사줄에 진주목걸이처럼 길게 늘여뜨려 여러가닥으로 만들고 거기에 음악적, 혹은 수학이나 물리적 현상이나 공식을 대입하여 이야기하는 유희라는 정도로만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동양에서 선비들이 모여 화두를 정해놓고 시를 짓거나 그림을 그리는 경연과 비슷한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혹은 일정한 패턴이나 규칙을 통해 음악적 구성과 흐름을 해석하려는 시도나 나아가 수학공식이나 물리공식의 특징을 자연의 산물에 빗대어 설명하려는 시도라고 생각되었다.

아무튼 유리알유희는 영재학교에서도 소수의 수재들에게만 전수되어 인정되고 시연되는 교육이자 수행의 방법이다. 그중 요제프 크네히트라는 유희명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유희라는 형식은 힘든 명상과 금욕적 수행을 기본으로 음악, 천문, 지리, 수학 등의 어려운 학술적인 대화에 부드러운 분위기와 흥미진진함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들은 유리알 유희를 위해 정기적으로 모여 축제라고 부르는 행사를 갖는다. 그것을 주관하는 책임자가 바로 유희명인이다. 어려운 학문을 축제로 여길 정도의 수준은 공자의 가르침을 떠오르게 한다. 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에서 잘아는 것, 좋아하는 것, 그리고 즐기는 것의 차이와 수준을 이야기한다. 이는 일의 단계와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는데, 처음에는 일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으로 일을 알아가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일을 잘 알게되면서 익숙해지면 좋아하는 단계로 나아가며, 일의 선후와 과정을 완전히 알게되면 순서를 바꾸거나 과정을 생략하고 추가하는 일까지도 자유롭게 응용할 수 있게 되어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희라는 용어를 쓰는 단계가 바로 즐길 줄 아는 수준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요제프 크네히트는 영재학교를 대표하는 영재이면서 겸손하고 성실한 완벽한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 주변에는 크네히트에게 호의적인 사람들 뿐이다. 그만큼 매력있고, 상대를 편안하게 하는 힘이 있는 인물이다. 그가 속한 학교가 있는 지역은 카스탈리엔이라는 교육주인데 로마의 교황청과 비슷하면서도 정치적이나 업무적으로 약간 다른 입장의 교육특구로 보여진다. 카스탈리엔의 모범생인 크네히트는 그당시 음악명인의 추천으로 상급학교인 발트첼에 입학하게 되고, 거기에서 자신의 삶에 변화를 주는 인물인 플리니오 데시뇨리를 만난다. 플리니오는 카스탈리엔과 유희명인의 조직이 현실세계와 동떨어진 조직이며, 그들만의 세계에 갖혀 있다고 비판하고, 이에 대해 크네히트는 공개토론을 통해 지속적으로 데시뇨리의 주장을 반박하고, 카스탈리엔의 역할을 옹호한다. 이 둘의 공개논쟁은 매력적인 두사람의 우정을 키우게 되고 서로의 의견에 대해 부분적인 공감을 갖게 한다. 결론적으로 데시뇨리는 귀족집안의 자제로서 다시 속세로 돌아가 귀족의 역할을 하며 살아가지만 가끔 카스탈리엔의 수업에 참여하게 되고, 크네히트는 유희명인이 되어 그를 맞이하면서 문득 유리알 유희의 한계를 깨닫고 현실세계에서 유희를 이어가려고 시도한다. 크네히트의 일탈은 지와사랑(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 나오는 헤세의 고민을 연상시켰다. 이는 곧 도라는 것은 현실과 다르지 않다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지와사랑에서 금욕적인 생활만을 고수하는 골드문트보다 타락한 모습의 나르치스가 깨달음을 먼저 얻게되는데, 가장 낮은 곳을 흐르면서도 다투지 않는 물이 도에 가깝다는 노자의 가르침과도 통하는 바가 있다.

크네히트는 세속과는 동떨어져 그들만의 세상에서 이루어 놓은 것들이 결국은 허상에 불과하여 무너져 버릴 것을 예상하고는 그들의 학문과 열정이 세상에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험해보고자 하였다. 크네히트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탐구정신을 유지하며 어려움에 대해 겸손하면서도 여유를 갖는 모습을 보여준다. 책의 후반부에는 그의 삶 자체가 유희의 모습처럼 그려진다고 느껴졌다. 주어진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거나 힘들게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그리고 성실한 자세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어느 순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上善若水란 이런 뜻이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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