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지리적 위치

전라북도의 서남단에 위치한 고창군은 고창읍을 비롯하여 13개면, 557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극동 동경 126°46´, 극서 동경 126°25´, 극남 북위 35°18´, 극남 북위 35°34´에 해당된다. 고창군은 동북쪽은 정읍시, 동남쪽은 호남정맥을 경계로 전라남도 장성군, 남쪽은 전라남도 영광군, 서쪽은 황해, 북쪽은 줄포만을 사이에 두고 부안군과 접하고 있다. 면적은 607.69㎢이고, 인구는 6만 328명(2008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3개 면, 557개 리가 있다.

호남정백이 내장산에서 이어지면서 동쪽의 군계가 서남방향으로 뻗어내려 전라북도내 서부지역에서 부안군과 함께 산지성 지역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동남쪽과 북쪽의 아산면 일대가 높은 편이며 중앙은 낮은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있다. 전체적으로 구릉지가 넓고 충적지가 좁은 것이 특징이다.

동남부의 호남정맥 줄기에는 방문산(620m), 방장산(734m), 문수산(620m), 고산(527m)등의 높은 산들이 솟아 있으며, 이들의 기반암은 편마상화강암이다. 서북부의 선운산지가 있는 아산면·심원면·부안면 일대에는 줄포만을 사이에 두고 인접한 변산반도와 같은 백악기 말의 신기화산분출함을 기반암으로 한다. 선운산지에는 경수산(444m)·소요산(444m) 등 300~400m의 산들이 솟아있다. 그 밖에 상하면과 무장면 경계에 있는 송림산(295m) 부근에 100~200m의 낮은 산지가 있다. 이들 산지를 제외한 군의 중앙부는 100m 내외의 낮은 구릉으로 되어 있으며, 기반암은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이들 구릉지는 1970년대 중반부터 적극적으로 경지로 개간되었다.

하천은 대체로 짧고 수량도 많지 않으며, 충적평야는 이들 하천 유역에 좁게 형성되어 있다. 주요 하천으로는 호남정맥 서사면에서 발원해 고창읍을 관통한 후 선운산지의 중앙을 지나 줄포만으로 흘러드는 인천강이 있다. 인천강에는 고수천이 문수산에서 발원해 고수면을 관통한 뒤 아산면에 흘러든다. 그 밖에 주진천은 경수산과 소요산에서 발원해 선운사 옆을 지나 줄포만으로 흐른다. 이들 하천 유역은 대개 구릉지대로서 관개가 용이해 논으로 이용되고 있다. 줄포만에는 넓은 갯벌이 전개되며, 서부해안에는 사주가 형성되어 해수욕장으로 개발되어 있다.

고창군의 기후는 남부서안형 기후구에 속하면, 연평균 기온 13℃, 1월 평균기온 ?1.0℃, 8월 평균기온 25℃ 연강수량은 1,200㎜ 내외이다. 겨울철에 눈이 많고, 동부의 호남정맥 서사면은 지형성 강우가 많다.

고고·역사적 배경

고고학적 배경

고창군은 여러 소하천이 서해로 흘러가면서 그 주변에 발달된 충적평야와 동남쪽에 형성된 산악지형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곳이다. 이러한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이 지역에는 선사시대부터 역사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문화유적이 밀집되어 있다.

구석기시대 유적은 2008~2009년 조사가 진행된 고창 부곡리 증산유적이 현재로서는 유일하게 조사되었다. 이 유적의 주변에는 석영암계의 석재가 풍부하게 확인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석기 제작소의 존재가 여러 층에 걸쳐 확인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여러 시기에 걸쳐 석기 제작행위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와 관련된 많은 격지편들과 망치 그리고 제작된 도구가 발견된 점은 이 지역에서 인류의 행위가 빈번하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출토된 석기들은 주먹도끼나 양날찍개 그리고 긁개와 홈날석기 등이 있는데 이는 호남지역의 구석기시대를 복원하는 좋은 자료로써 이 유적의 중요성을 더해준다.

신석기시대 유적으로서는 현재 조사된 지역은 없지만 인근지역인 부안에서 이루어진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통해 유적이 확인되고 있어 지형이 유사한 고창군에서도 확인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청동기시대 유적으로는 고창군 전역에 분포되어 있는 지석묘와 주거지 등이 있다. 주거지는 교운리 유적에서 원형주거지와 수혈유구가 조사되었으며, 죽림리 지석묘군과 인접한 죽림리 유적에서는 주거지, 굴립주건물지, 집석유구가 조사되었다. 예지리 유적에서는 원형주거지, 수혈유구, 야외노지, 지석묘 1기가 조사되었으며, 산정리 유적에서는 주거지, 수혈유구, 굴립주건물지 등이 조사되었다. 지금까지 고창지역에서 조사된 주거지 중 이른 시기의 것은 아직 조사예가 없으며, 중에 해당는 송국리형 주거지가 대부분이다. 지석묘는 1960년대 국립박물관에 의해 아산면 상갑리에서 최초로 이루어졌다. 이후에도 아산댐 수몰지구·죽림리·성송면 암치유적 등이 조사되었다. 죽림리 유적은 정밀지표조사에 의해 481기의 지석묘가 확인되었다. 또한 서해안고속도로 구간내 문화유적 발굴조사에서는 죽림리와 인접한 곳에서 지석묘 1기가 발굴되었다. 구석기유적이 조사된 고창-장성간 고속도로 건설공사 구간 내의 부곡리 유적에서 20기의 지석묘가 확인되었다.

철기시대 유적으로는 주거지와 분묘유적으로 나눌 수 있다. 주거지는 신덕리, 성남리, 교운리, 봉덕리, 남산리 등에서 확인되었다. 이들 주거지는 대부분 평면형태가 방형의 4주식으로 바닥 가장자리에 벽구가 마련되었다. 분묘유적은 고창읍 신월리, 신림면 송룡리, 아산면 봉덕리, 도산리 등에서 확인된 옹관묘와 매장주체부 바깥에 도랑이 돌아가는 주구묘가 있다. 주구묘는 서해안고속도로 구간 내 발굴조사로 예지리, 성남리 , 신덕리, 광대리, 만동, 남산리 유적이 있으며,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서 실시한 고창 일대의 분구묘 조사에서 21기가 보고되었다.

삼국시대의 유적으로 아산면 중월리 유적과 대동리 쌍천 유적이 있으며 상갑리 쌍치고분, 학사리사신원고분, 흥덕면 남당리고분, 고수면 예지리고분 등이 있다. 또한 아산댐 수몰지구에서는 백제토기요지가 조사 된 바 있다.

성곽유적은 고창읍과 무장면, 흥덕면에 위치한 3개의 읍성과 백제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예지리, 섬틀봉, 장사성, 왕촌서, 고산성, 고현성지가 있다. 봉수대지는 남쪽으로 전남 영광군 홍농산에서 연락을 받아 북쪽의 소응포 봉수대로 전달해 주는 고리포 봉수대지와 검산리 봉수대지가 있다.

자기요지는 부안면 수동리, 아산면 반암리·용계리·운곡리 등이 있다. 특히 발굴조사된 용계리 청자요지는 초기청자요지로 인근의 부안군 진서리와 유천리 청자요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밝혀졌다.

역사적 배경

삼한시대 고창은 마한의 영토로 모로비리국(牟盧卑籬國)에 속했으며,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모량부리현(牟良夫里縣)·송미지현(松彌知縣)·상로현(上老縣)·상칠현(上漆縣)에 속하였다. 그 뒤 757년(경덕왕 16) 모량부리현은 고창현으로, 송미지현은 무송현(茂松縣)으로, 상로현은 장사현(長沙縣)으로, 상질현(尙質縣)으로 개칭되었으며, 보리고을을 상징하는 모량부리의 속명인 모양(牟陽)이 이 곳 지명으로 함께 사용되어 왔다. 뒤에 구창·무송·장사 3현은 무령현(武靈縣)의 영현이 되었고, 상질현은 고부군의 속현이 되었다.

고창현은 고려 초기에 고부군에 속했다가 상질감무(尙質監務)가 겸했고, 장사현은 영광군에 속했으며, 무송현도 초기에는 영광군에 속했다가 장사감무가 겸임하였다. 또한 상질현은 고부군에 속했다가 장덕(章德 또는 昌德)으로 고쳐 감무를 두고, 고창을 겸무하게 하였다. 특히 고창지방은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고려시대부터 전라남도지방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는데, 이는 당시의 장사현과 무송현이 나주목 영광군에 속해 있는 것으로도 입증된다. 1308년 충선왕이 즉위하자 왕명을 피해 장덕을 흥덕으로 개칭하였다.

1401년(태종 1) 고창현에 감무를 두었으며, 1455년(세조 1) 지방방위조직의 개편에 따라 나주진관(羅州鎭管)의 속읍이 되면서 현감을 파견했고, 속오군(束伍軍)은 입암산성에 속하였다. 무송현과 장사현은 1417년 무장현으로 통합되면서 진을 두어 병마사가 겸무했으며, 1423년(세종 5) 첨절제사로 바꾸었다가 1482년(성종 13) 현감으로 고쳤고, 1863년(헌종 2) 군으로 승격되었다. 흥덕현은 1455년 전주진관의 속읍이 되었고 감무를 현감으로 고쳤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나타난 고창현의 호수는 164호, 인구는 974인, 무장현은 호수 356호, 인구 2,033인, 흥덕현은 호수 216호, 인구 1,051이었다. 특히 고창지방에는 조선시대에 해군의 군사적 요충지로 중시되면서 많은 성과 봉수대가 축조되었다. 또한 1420년 무장향교, 1512년(중종 7) 고창향교, 1621년(광해군 13) 흥덕향교가 창건되어 이 지방의 유교문화를 보급시키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고창지방에서도 이에 호응해 무장읍 밖 고산봉(孤山奉)에 진을 치고 봉기의 대의를 밝히는 포고문을 발표하였다.

1895년 지방제도의 개편에 따라 고창현은 군으로 승격되어 전라북도에 편입되었으며, 무장군은 전주부에 소속되었다가 이듬해 전라남도에 편입되었고, 1906년 다시 전라북도에 편입되었다. 흥덕현은 군으로 승격되었다가 1906년 부외·부내 두 면을 병합해 부안군으로 개칭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3개의 군이 하나로 합쳐져 고창군이라 칭해졌으며, 193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14개 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1955년 7월 1일 고창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73년 7월 1일에 신림면 제하리가 흥덕면에 편입되었으며, 1983년 2월 15일에 성송면 산수리 일부가 대산면에, 대산면 중산리 일부가 성송면에 각각 편입되었다. 그리고 1987년 1월 1일에 성내면 조동리 일부가 정읍군 소성면에, 고수면 봉산리 일부가 고창읍, 상하면 송곡리 일부가 해리면, 성송면 상금리가 대산면, 신림면 송암리가 흥덕면에 각각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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