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읍성
위치 : 전북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산 9
문의 : 관광안내소 063)560-8055, 매표소 063)560-8068
운영시간 : 05:00 ~ 22:00 (연중무휴)
주차시설 : 전북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182-6
소 개
고창읍성은 조선 단종 원년(1453)에 외침을 막기 위하여 전라도민들이 유비무환의 슬기로 총화 축성한 자연석 성곽이다.
일명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하는 이 성은 나주진관의 입암산성과 연계되어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 만들어 졌다. 1965년 4월 1일 사적 제 145호로 지정된 이 성의 둘레는 1,684m. 높이 4~6m 면적은 165,858㎡ (50,172평)로 동‧서‧북문과 3개소의 옹성 6개소의 치성(雉城)을 비롯하여 성밖의 해자(垓字) 등 전략적 요충시설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축성 당시에는 동헌과 객사 등 22동의 관아건물이 있었으나 병화로 소진된 것을 1976년부터 성곽과 건물 14동을 복원·정비 하였다
고창읍성의 축성연대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고창읍성의 관아건물 보수 때 나타난 상량문과 각종 문헌 및 성돌에 새겨진 글자들을 보면 축성연대를 짐작할 수 있다.
고창읍성은 조선 세종 32년(1450)부터 단종 원년(1453)까지 전라좌우도 19개 군·현에서 구간별로 분담하여 축성한 흔적이 성벽 구간마다 각자(刻字)되어 있다. 이중에는 무장시면(茂長始面)·무장종(茂長綜)이라는 흔적이 있으며, 동문옹성성벽에는 계유소축감동송지민(癸酉所築監董宋芝玟)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다.
이는 고창읍성이 계유년에 축조되었으며 무장현이 축성에 참여했다는 뜻이자, 증거라고 볼 수 있다. 고창읍성에 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고창현성곽조(高敞縣城郭條)에 처음 나타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중종 25년(1530)에 간행했으나 단지 증보처에 '신증'이라는 두 글자만 표시하였으므로, 성종 때 왕명에 의하여 김종직 등이 동국여지승람의 제 2차 수정을 거쳐 탈고한 성종 17년(1484)이전의 계유년으로 축성연대가 압축된다 할 수 있다.
무장현은 태종 17년(1417)에 무송현과 장사현을 통합하여 무장현이 되었으므로, 계유소축의 계유년은 1417년 이후의 계유년이 된다. 즉, 고창읍성은 1453년의 계유년에 축성된 것이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밟으면 병 없이 오래 살고, 저승길엔 극락문에 당도한다는 전설 때문에 매년 답성행사가 계속되고 있다. 성밟기는 저승문이 열리는 윤달에 밟아야 효험이 있다고 하며, 같은 윤달이라도 3월 윤달이 제일 좋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엿샛날이 저승문이 열리는 날이라고 하여 초엿새, 열엿새, 스무엿새 날에 답성행렬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 돌면 극락승천한다고 한다. 손바닥만한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세 번 돈 후에, 일정한 지역에 그 돌을 쌓아두도록 했다. 특히 윤삼월의 효험을 강조하고 있음도 겨우내 부풀었던 성을 밟아 굳게하기 위함이었을 것이고, 머리에 돌을 이게 함으로서 체중을 가중시켜 성을 더욱 다지게하는 의도였을 것이다.
성밟기를 한 후 머리에 이고온 돌을 일정한 지역에 쌓아놓게 한 것은 유사시 석전(石戰)에 대비하기 위한 유비무환의 예지라 생각된다. 우리는 이러한 민속놀이를 통해 우리조상의 슬기를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동원을 강제하지 않고 스스로 참여시키는 독특한 우리문화의 양상을 알 수 있다.
관람안내
관람료
구분 | 어른 | 청소년 및 군인 | 어린이 |
---|---|---|---|
관람료 징수액 | 3,000원 | 2,000원 | 무료 |
고창사랑 상품권 지급액 | 2,000원 | 1,000원 | 미지급 |
※ 2023 세계유산도시 고창방문의 해 (2023.01.01 ~ 2023.12.31) 기간 동안 관람료를 고창사랑 상품권 전액 지급합니다.(지원제외 : 단체관람료, 전북투어패스 이용객) (고창사랑상품권은 고창군내 상가, 식당등에서 사용가능하며 고창군 관광진흥에 관한 조례 제4조에 따라 예산의 범위에서 지원합니다.) |
관람료 징수 대상
- 어린이 : 초등학교 학생과 7세이상 12세 이하의 자를 말한다.
- 청소년 : 13세 이상 18세 이하인 자와 학생증을 소지한 중학생, 고등학생을 말한다.
- 군 인 : 하사이하의 군인과 전투경찰·의무경찰을 말한다.
- 어 른 : 19세 이상 65세 미만을 말한다.
관람료 면제 대상
- 고창군민으로서 주소지가 고창군으로 되어 있는 신분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
- 주민등록증 또는 경로우대증을 지닌 65세 이상인 사람
- 보호자를 동반한 6세 이하 영‧유아
- 국가유공자 및 그 배우자 또는 국가유공자 유족으로서 국가유공자 유족증 가진 자
- 장애인으로서 복지카드를 가진 사람. 단, 장애의 정도(1~3급/중증)에따라 동반하는 보호자 1명을 추가
- 국빈ㆍ외교사절단 및 그 수행자
-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및 그 수행자
- 문화재를 연구하기 위하여 중앙부처나 도의 승인을 받은 자
- 공무수행을 위하여 출입하는 자
- 국군의 날에 입장하는 군인, 어린이날에 입장하는 어린이, 군민의날, 모양성제 행사기간에 입장하는 자
- 「관광진흥법」 제2조 제12호에 따른 문화관광해설사 자격증 및 같은 법 제38조에 따른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달고 단체관람객 인솔ㆍ안내를 위해 입장하는 자
- 학생 인솔 등 교육활동을 위해 입장하는 초ㆍ중ㆍ고 교원(유치원 및 시설 교사 포함)
- 그 밖의 군수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자
고창읍성 시설 이용수칙
- 협의된 차량 이외 모든 차량 금지(킥보드, 자전거 포함)
- 애완동물 동반 출입금지 (안내 복장 착용한 안내견 제외)
- 흡연 및 취사/ 음주 금지
- 미허가 된 초경량 비행장치(드론)의 촬영 금지
- 임산물 채취 금지
1일 시설 사용료
행사명 | 요금 | 비고 |
---|---|---|
상업용 촬영 | 300,000원 | 영화/드라마 촬영 등 |
기타행사 | 200,000원 | 유치원 및 학교 행사 등 |
결혼식 | 100,000원 | 전통혼례 장소 제공 |
역사문화
※ 아래의 제목을 클릭하면 상세내용이 펼쳐집니다.
-
고창객사
조선시대에는 각 고을에 객사라고 하는 관아가 있었다. 중앙의 몸채에는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 그리고 나라에 경사와 궂은 일이 있을 때 대궐을 향하여 예를 올렸으며 왼쪽과 오른쪽 방은 조정에서 파견된 관원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다. 본관의 현판에 쓴 모양지관의 모양은 예로부터 이 고장을 모양고을이라 하였고 이 성을 모양성이라 불러온데서 비롯된 당호이다. 이곳에는 조선시대의 객사가 있었으나 건물은 없어지고 터만 남아 있던 것을 1988년 발굴조사하여 확인된 유구와 각종 자료를 참고하여 1991년에 원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
고창내아
동헌은 외동헌과 내동헌으로 나뉘는데 외동헌은 사무처로 흔히 이를 동헌이라 불렀으며 내동헌은 수령이 기거하던 살림집으로 내아라고 불렀다. 이 자리에는 조선시대의 내아가 있었으나 건물은 없어지고 터만 남아있던 것을 1987년에 발굴조사하여 확인된 유구와 각종자료를 참고하여 1989년에 원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
-
고창동헌
조선시대의 목과 도호부 ·군·현 등 각 행정단위에는 중앙에서 파견된 수령이 정무를 보던 청사를 세웠는데 이를 일반적으로 동헌이라 하였다. 건물정면에는 백성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고을을 평안하게 잘 다스린다는 뜻의 평근당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이 자리에는 조선시대의 동헌이 있었으나 건물은 없어지고 터만 남아 있던 것을 1987년에 발굴조사하여 확인된 유구와 각종자료를 참고하여 1988년에 원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
옥
옥은 죄인을 가두는 곳으로 감옥 또는 원옥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의 옥은 대개 관아의 입구에다 짓고 동쪽 칸과 서쪽 칸에 남·여 옥을 나누어 만들고 높은 담을 둥글게 둘러 쳤는데 그래서 생겨난 이름이 원옥이다. 이 자리에는 조선시대의 옥이 있었으나 건물은 없어지고 터만 남아있던 것을 1983년에 발굴조사하여 확인된 유구와 각종자료를 참고하여 2000년에 원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
-
풍화루
이 건물은 고창읍성 연못옆에 세운 2층 누각이다. 문헌에는 성내의 빈풍루와 풍화루가 있었다고 전해오고 있으나 건물과 연못은 모두 없어지고 터만 남아있던 것을 1988년에 발굴조사하여 확인된 유구와 각종자료를 참고하여 풍화루는 1989년에, 연못은 1990년에 원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공복루
이 건물은 낮은 기단위에 전면에는 자연석 주춧돌을 사용하고 배면은 화강석 돌기둥 위에 둥근기둥을 세워 만든 2층 문루이다. 고창읍성에는 정문인 공북루(북문)와 등양루(동문), 진서루(서문)등 3개소의 성문이 있는데 성문앞에는 적으로부터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옹성을 둘러쌓고 그 위에 여장(여담)을 쌓아 성안에서 밖을 살필 수 있는 현안과 총을 쏠 수 있는 총안(근총안, 원총안)을 만들어 놓았다. 공북루 전후 사적기와 상량문에는 순치 3년 (인조 24년 : 1646) 병술 12월에 공북루를 소건하고 그 후 3회에 걸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
향청
조선시대에는 대개의 고을에 향청이라는 관사가 있었다.지방의 수령을 자문 보좌하던 자치기구로서 조선 초기에는 유향소라고 하였는데 임진왜란 이후부터 향청이라고 불렸다. 향청의 설치목적은 지방의 향리를 규찰하고 향풍을 바르게 하는 등 향촌교화를 담당하였다고 한다. 이 자리에는 조선시대의 향청이 있었으나 건물은 없어지고 터만 남아 있던 것을 1983년 발굴조사하여 확인된 유구와 각종자료를 참고하여 1993년 원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
장청
조선시대에는 왕궁과 병영 및 진을 지키는 중앙군인과 지방의 군 · 현을 지키는 속오군 제도가 있었는데 장청은 속오군의 우두머리인 현감과 병방·군교들이 군무를 보살피던 청사이다. 이 자리에는 조선시대의 장청이 있었으나 건물은 없어지고 터만 남아있던 것을 1991년에 발굴조사하여 확인된 유구와 각종자료를 참고하여 2000년도에 원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
관청
관청은 관주라고도 하였는데 지방 관아의 주방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던 곳이다. 이곳에서는 수령과 그 가족들의 식생활을 비롯한 빈객의 접대와 각종잔치에 필요한 물품의 조달 및 회계사무를 관장하였다. 이 자리에는 조선시대의 관청이 있었으나 건물은 없어지고 터만 남아있던 것을 1991년에 발굴조사하여 확인된 유구와 각종자료를 참고하여 1992년에 원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
-
지석묘
지석묘는 우리나라의 선사시대에 속하는 청동기시대(BC 4~5세기경)의 무덤형식 가운데 하나로 고인돌이라고도 한다. 고창군에는 2000여기의 지석묘가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고창읍 죽림리 지역에만 각종 형식의 지석묘 447기가 분포되어 있어 1994년에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 제 391호)로 지정되고 2000년 12월 2일에 세계문화유산 (977호)으로 지정 되었다. 이 지석묘는 죽림리 일대의 지석묘가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으로 결정된 기념으로 제 25회 모양성제 (1998. 10.28)날에 강호상공고 재학생 200여명이 지석묘 축조과정을 재현하면서 만든 것이다.
척화비
이 비는 조선말기에 대원군이 펼친 쇄국정책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병인년(1866)에 비문을 만들고 신미년 (1871)에 세웠다. 당시 서양의 열강들이 무력을 앞세워 문호의 개방을 요구하고 엄청난 힘으로 밀어 닥치자 섭정의 자리에 있던 흥선대원군은 이들의 위협에서 나라를 지키는 길은 쇄국정책을 펴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 비를 세웠다고 한다. 비문의 내용은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는 것은 곧 화친을 하자는 것이고 화친을 하자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임을 온 백성에게 경계한다”라는 뜻이다.” 이 비문을 지은 병인년에는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도화선이 되어 병인양요가 발생하였고 비를 만들어 세운 신미년에는 미국군함이 강화도를 침범한 신미양요가 발생하였다.
위치정보
자가용
- 서울 → 대전 → 호남고속도로 → 정읍I.C → 고창군 흥덕면 → 고창읍성(모양성)
- 인천, 수원, 경기 → 서해안고속도로 → 선운사I.C/고창I.C → 고창읍성(모양성)
- 대구 → 88고속도로 → 담양·고창 고속도로(고창방향) → 고창I.C → 고창읍성(모양성)
- 부산, 마산 → 남해고속도로 → 담양·고창 고속도로(고창방향) → 고창I.C → 고창읍성(모양성)
버스편
- 서울·고창 간 고속버스 시간안내
- 강남고속버스터미널
- 07:00~19:00(40분 간격)
철도편
- 열차를 이용하시는 분은 정읍역에서 고창행 버스를 이용하십시오.
- 정읍·고창 간 시외버스 시간
- 06:00~20:30까지 30분 간격으로 운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