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김장은 김장푸드트립으로!
11.12 금~12.12 일
월,화 김장체험 제외
접수문의 1522-3698
성하농원
  • 운곡생태습지 탐방객을 위한 운곡습지 주차장↔고인돌박물관 주차장
콜택시 운행
  • 고창농악전수관 상설굿판
매월 마지막주 목요일 7:30 고창농악전수관 전석 무료
6월 제 23회 고창농악 문화재발표회 판굿
7월 굿,길, 그리고 만남
8월 고창노악 인문학콘서트 전라도의 북
9월 이립오너라
10월 고창농악 구정놀이
  • 소리꾼과 함께하는 신명난 고창읍성 여행 솔바람 댓잎소리 고창읍성 여름나기
소리꾼과 함께 고창읍성을 신명나게 돌아보며
고창 여행의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습니다.
매주 토,일 오후2시~4시30분, 고창읍성 앞 매표소 출발
참가비: 5,000원 (입장료, 카페 커피음료, 기념품 포함)
문의 및 예약 : (063) 563 - 8808 주민공정여행사 팜팜  
고창읍성 → 판소리박물관 → 중거리당산 → 여행자카페 모로가헤 → 고창전통시장 

- 고창 전통시장은 자유일정입니다. 
- 우천시에는 진행되지 않습니다.
주민공정여행사 팜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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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군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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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읍성(모양성)

세월을 떠받치고 서있는 유적들 고창읍성(모양성)
고창읍성은 모양성이라고도 부르며 고창군 남쪽 성주봉인 장대봉(108m)에 좌청룡 우백호의 자세를 최대로 이용하여 축조한 성곽이다. 이 성곽은 모제석축이 아니라 모서리 이음의 공법으로 축조하였다. 그래서 외면만 돌을 쌓고 안쪽은 흙과 잡석으로 다져져 있다. 동, 서, 남, 북의 3문과 치 6곳, 수구문 2곳, 옹성 등이 있다. 조선시대 읍성에서 흔히 보이는, 육측에 호예문을 열고 초루를 세우는 방식과 달라, 성곽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북문은 2층처럼 생긴 다락집이고, 아래층 어간에 문짝 둔테구멍이 있다. 서문터는 1976년 발굴되어 기둥초석과 문짝 달던 위치가 확인되고, 동문터도 기둥 초석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이러한 성문 구성은 다른 유구에서 아직 조사된 바 없어 성벽과 문루화의 접합에 대하여 밝히지 못하고 있다.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고, 자연석은 거칠게 다듬어 썼는데, 초석 당간지주 등을 깨뜨려 쓴 것도 있다. 동쪽으로는 방장산, 서쪽으로는 서원평 건너 서산, 남쪽으로는 봉맥을 넘어 취령산, 북쪽으로는 전면의 자연 방어물인 고창천을 건너 흥덕으로 통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그리고 호남정맥 영산기맥에 이르는 호남 땅의 맥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성벽에 새겨진 각자를 보면 전북, 전남, 제주의 각 고을에서 책임 구역을 정하여 합동으로 축조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자주방어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엿볼 수 있다.

동헌과 내아
조선시대의 각 고을에는 중앙에서 파견된 수령이 정무를 보던 정사를 세우는데 이를 동헌이라 하였다. 동헌 옆에는 내동헌 곧 내아라고 하는 수령의 살림집도 있다. 동헌은 평근당이라는 당호의 현액이 석전 황욱의 필치로 새겨 걸었다.
객사(모양지관)
조선시대에는 각 고을에 객사라고 하는 관아가 있었는데 조정에서 파견된 관원들의 숙소로 사용되었으며 객사 중앙에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 그리고 나라에 경사와 같은 일이 있을 때 대궐을 향하여 예를 올렸다
답성놀이
"답성놀이하며 무병장수 하세요"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 돌면 극락승천한다는 전설 때문에 윤달이면 부녀자들의 답성놀이가 줄을 잇고 있다. 윤달 중에서도 초엿새, 열 엿새, 스무 엿새는 저승문이 열리는 날로 전해져 답성객들로 크게 붐빈다. 성을 돌 때에는 손바닥만한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세바퀴 돌아야 한다. 머리에 인 돌을 성입구에 쌓은 뒤 손수 가꾼 오곡을 백지에 펴고 삼배를 올리며 소망과 무병장수를 기원하면 된다. 약 1.7km의 고창읍성을 한 바퀴 도는데는 30분 정도 걸린다.

시간속을 맴돌다

기행문 임성실작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먼지처럼 쌓이는 세월을 떠받치고 서있는 유적들, 요즘은 그러한 것들이 문득 영화 속의 한 장면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갑작스레 많은 이들의 발길을 모으기도 한다. 고창의 대표 유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고창읍성 또한 최근 왕의 남자라는 영화를 통해 주목받은 명소 중 하나, 연산군과 중신들이 짐승으로 분장한 광대들을 목표물로 모의 사냥을 하던 울창한 대숲이 바로 고창읍성이다. 실제로 가보면 극중의 급박하고 긴장된 느낌과는 또 다르게 푸르른 숲과 잘 보존된 성곽이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곳, 영화보다 깊은 인상을 남기는 고창읍성의 진면목을 찾아 지금 발걸음을 옮겨보자!

읍에 들어서면 고창의 관문처럼 문을 열고 맞이하는 고창읍성, 1453년, 조선 단종 원년에 왜침을 막기 위해 쌓았다는 성으로 백제 때 고창지역은 모량부리라는 지명으로 불렸던 까닭에 모양성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무색할 만큼 성의 윤곽이 거의 그대로 복원돼 있는 고창읍성. 지어졌을 당시에는 입암산성과 연계하여 호남 대륙을 방어했던 전초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전해오는데, 성이 쌓여진 데에는 독특한 전설이 있다. 당시 남자들과 여자들이 가각 성을 쌓는 내기를 했는데 여자들의 힘을 만만하게 본 남자들이 내기에서 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면 어쩐지 다른 성곽과는 달리 아기자기한 형태가 부각되어 보이기도 한다.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이용해서 쌓았는데도 아귀를 잘 맞춰서 보기에도 좋을 뿐 아니라 전국에서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된 튼튼한 성이라고 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 고창읍성만이 가진 독특한 모습이 있다면, 답성 놀이를 빼놓을 수 없겠다. 여자들이 머리를 돌을 이고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리 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 돌면 극락승천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하는데, 그 효험이 윤삼월에 좋다는 속설 때문에 매년 답성놀이 인파로 붐비는 해프닝도 벌어진다. 특히 엿새 날에는 저승문이 열린다 하여 답성놀이가 절정을 이룬다고 하는데... 돌을 이고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는 그 많은 이들의 간절한 소원은, 지금쯤 다 이루어졌을까 특히 봄이면 성벽을 따라 철쭉과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성 둘레를 감싸고 있어 영화보다 더 영화다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 고창읍성. 성 둘레는 경사가 심하지 않아서 꽃향기를 맡으면서 산책을 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더불어 성곽 안에는 울창한 소나무와 대나무 숲사이로 동헌, 객사 등의 유적이 복원돼 있는데, 짧은 시간이나마 여유로운 걸음으로 성안을 거닐다보면 또 다른 시간 속을 멤도는듯, 돌담 너머 또 다른 세상에 들어선 듯, 모처럼 조용하고 평화로운 휴식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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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20-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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