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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탐방 감상문-흥덕중학교 2학년 김다◌

  • 작성자 : 동학관리자
  • 작성일 : 2019.05.15
  • 조회수 : 45

2019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탐방학습 소감문

흥덕중학교 2학년 1반 김다◌

탐방학습 코스: 선운산 미륵불- 녹두장군 정봉준 생가터- 고창 모양성- 동학농민운동 홍보관- 무장기포지

  2019.04.26.(금). 오늘은 학교에서 체험학습을 갔다. 역사 선생님이 전교생을 위해서 고창 군청에 탐방학습을 신청 하셨는데 당첨이 돼서 가게 된 것이다.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비가 많이 와서 우산을 챙기고 버스를 타고 선운산 미륵불에 갔다. 버스 운전기사님이 비가 부슬부슬 계속 내려서 마애 미륵불 근처에 내려 주셨다. 200m 쯤 올라가 선운산 미륵불에 도착을 했다. 문화해설사님이 선운산 미륵불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해주셨다.
  나는 생각해보았다.  우리의 체험학습의 주제는 동학농민혁명이다. 그런데 왜 선운산 미륵불에 왔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문화해설사님이 ‘이곳이 1894년에 선운산 미륵불과 우리 지역 동학농민운동의 시작과 관련 있다고 말씀을 해주셨다. 여기에는 전설이 있는데 여기에 비기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여기는 고려 시대 때 만들어 졌다고 추정되는데 정확한 근거는 없다. 전설로 들려 내려오는 이야기다. 진정한 영웅이 비기를 가져갈 수 있고 진정한 영웅이 아니면 비기를 가져가는 사람에게 번개가 친다고 한다.
  1894년 가을 손화중이 대나무를 엮어서 사다리를 만들어서 비기를 가져갔다는 소문이 있었다. 사람들이 믿음은 손화중에게 가 있었고, 그때부터 고창 지역의 동학농민 운동이 시작되었다. 내가 가 봤을 때는 너무나 멋졌다. 여기에 손화중이 있었고, 옛날 사람들이 있었다는 그냥 그 자체가 놀라웠다. 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아직까지도 보고 있다. 미륵불에 비기가 있었는데 손화중이 가져가고 그다음은 누구 차례가 올까? 그 비기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혹시 우리 앞에 있는건 아닐까? 과연 전설일까? 등등 미륵불앞에 섰을 때 한 번에 여러 의문점이 나왔다. 정말 즐거웠다.
 또 올라갔는데 거기는 어딘지 모르겠다. 올라가보니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면서 말하고 있었다. 작은 기와집 안에서. 녹음한 것 같기도 하고 뭔지는 잘 모르겠다. 문화해설사님의 이야기가 잘 안 들려서 더 가까이가고 싶었는데, 친구가 자기 쪽으로 오라고 해서 잘은 못 들었다. 아쉬웠다 그래도 제대로 들은 것은 여기가 원래 연못이었다고 한다. 잘 둘러보니 연못이 흘렀던 장소가 나에게는 보였다. 옆을 돌아보니 바위에 검정색 물체가 끼여 있었다. 만지고 싶었지만 경사가 조금 있어서 무서워서 못 만졌다. 그래서 다음에 가족끼리 다시 가고 싶다. 거기에 경치는 그야말로 멋졌다. 완전 큰 산들도 있고 바위산들도 있었다.
 다음 코스는 전봉준 생가터였다. 생가 마루에 앉은 후 문화해설사님에게 생가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는 전봉준이 13살 때 까지만  살았다고 한다. 전봉준은 몰락한 양반 출신이라고 하셨다. 몰락한 양반 출신이라는 것은 평민보다 더 안 좋은 삶이다. 하루에 밥  한 끼도 못 먹는 몰락한 양반출신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좀 더 많은 건물들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불타서 없어졌다고 한다. 여기는 2개에 건물만 남겨져 있다. 이곳에 20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았다고 한다. 전봉준은 12살에 18살 여자와 결혼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해설사님이 자기가 전봉준이라고 하셔서 깜짝 놀랐었다. 녹두장군 전봉준이 자신처럼 키가  작았다고 하셨다. 전봉준의 키는152cm로 매우 작았다고 한다.
  전봉준 생가터에 앉아 있을 때 기분이 좋았다. 역사의 현장을 직접 보다니 너무 좋았다. 그다음 고창에서 점심밥을 먹었다. 나는 자장면이었는데 배부르게 잘 먹었다. 12시 30분까지 자유시간이어서 모양성에 있었다. 모양성을 걸어가고 싶었는데 친구가 걸어다니는 것을 귀찮아해서 벤치에 앉아서 언니들과 애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코스는 동학농민운동혁명 홍보관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동학농민운동을 한 인물들의 사진 이야기가 있고, 언제 태어났는지 언제 돌아가셨는지 나와 있었다. 내 눈에 띄었던 것은 퍼즐이었다. 그래서 내가 섞고 맞추어보려고 했는데, 친구가 막 섞어버려 맞추질을 못했다. 해설사님의 말씀을 들어보았다. 들었지만 퍼즐 맞추느라 잘 안들렸다. 지금 이걸 보고 있는 선생님에게 죄송하다는 마음이 생겼다. 제대로 집중을 안 해 버려서. 다음 체험학습에서는 정말 친구들이 건들어도 대꾸를 안 해주고 이야기 하시는걸 똑바로 잘 듣고 많은 것을 배워야 겠다. 오늘의 교훈이다.
  그래도 나는 동학농민운동을 이끌었던 인물들을 보았다. 그중에서 고창사람 은 단 한명 뿐이였다, 바로 전봉준이다. 다른 인물들은 다 정읍 출신인데 전봉준장군만 고창사람이다.  정읍에서 동학농민운동 행사가 왜 많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존경한다. 위대한 전봉준 장군이 고창에 살았던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여기가 그전에 농민들의 훈련장이었다고 한다.
 다음 코스는 동학농민운동의 발상지인 무장기포지이다. 가보니 정말 춥고 바람이 많이 불었었다 그렀지만 나는 참을 수 있었다. 옷을 따뜻하게 입어서. 이곳은 고창의 동학농민운동 전적지인 무장기포지이다. 죽창을 만들어 관군과 싸우고, 부정부패를 없애자는 혁명 운동을 시작하였던 곳이다. 그 때 이곳에 모였던 동학농민군의 함성이 들리는 듯 하였다.
 오늘 체험은 너무 멋지고 좋았다. 역사의 진실을 하나씩 배우고 알아갈 때마다 나는 온몸에 소름이 싹 돋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더 많은 역사의 흔적들을 찾고 경험하고 싶다. 내가 모르는 역사들까지. 오늘 역사 현장을 둘러보니 옛날의 느낌? 그런게 많이 느껴졌다. 오늘 경험하게 해 준 선생님이나 해설사님 등에게 감사하다. ‘오늘 정말 좋은 경험을 했어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다음번에도 보내주세요!! >,<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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