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10 미당시문학관

미당시문학관 이미지

바람의 시를 만나러 가자. 아닐 未 집 堂, 미당시문학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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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포 이정표를 따라 용선교 다리를 건너자. 이곳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풍천風川이다.
갈바람이 부는 이곳은, 살기 좋은 선운리에 있는 미당시문학관이다.
멀리서도 문학관 외벽을 타는 붉은 담쟁이가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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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리 질마재 마을은 미당 생가가 있는 곳이다.
아담한 마당에는 국화가 피어 있고, 감들이 익어가고 있다.
그리고 처마 밑에 시 한 편이 걸려 있다.
"하이얀 순이 돋은 수정 산돌 국화밭 새에 두고 길렀습니다"
(국화와 산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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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수정돌에 물을 주면 수정이 자란다고 생각하여
수정돌을 국화밭 사이에 심어두고 물을 주며 길렀다고 한다.
선운사 동구, 국화 옆에서, 국화와 산돌, 그리고 조형물이 우리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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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는 시를 즐기자. 미당시문학관 입구에는 국화와 코스모스, 노란 바람개비가 반겨준다.
국화꽃 필 즈음이라는 작은 카페도 있다. 담쟁이 드리워진 문학관 대문을 천천히 지나가자.
미당시문학관의 담쟁이는 가을이 되면 빨갛게 물든 가을 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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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국화 옆에서 中)
누구나 한번쯤은 읊어봤을 ‘내 누이같이 생긴 꽃’을 마주하며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은의 뒤안길에서' 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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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아닐 未, 집 堂. 미당시문학관의 담쟁이가 웃는다.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는 담쟁이 위에 드리워진 하늘은 푸르게 피어있다.
미당시문학관 건물 외벽을 타고 오르는 붉은 담쟁이에 이끌려 살랑살랑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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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 담쟁이, 바람, 하늘, 뒹구는 낙엽, 넝쿨뿌리, 창가 그 어느 것 하나 시詩가 아닌 것이 없다.
시심이 절로 생기게 만드는 이곳은 원래 학교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딘가 익숙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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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시문학관을 들어서면 소개글이 적혀있다.
"봉암초등학교 선운분교를 개보수하여 서정주 시인을 위한 기념공간으로 조성(2001.11.3.),
미당 서정주 시인의 고향이며 좌우로 생가와 묘소가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희귀한 문학관이다. 시인의 삶과 죽음과 기념관이 고향마을 한 곳에 오롯하게 모여있다."
폐교된 자리는 서정주 시인을 위한 기념공간으로 재탄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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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일대기를 테마별로 분류해 감상하실 수 있는 미당시문학관
바람의 시를 만나러 가보자.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푸르른 날 中)
미당 서정주 시인의 시에 송창식이 음율을 입혔던 그 유명한 푸르른 날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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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누군가에게는 자상하고 헌신적인 아버지였으며, 인자한 할아버지이자 다정한 지아비였다.
미당 서정주 시인의 시에 종종 등장하였던 부인 방옥숙 여사가 먼저 세상을 뜨자, 그는 곡기를
끊었고 이후 두 달 반 만에 하늘로 돌아갔다. 이는 63년 동안 부인과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할망구가 진짜 시인이고 나는 대서쟁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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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 년 동안 시만 써 왔으니, 나도 시인 중의 한사람으로 꼽힐 수 있겠는가?"
"선생님,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십니까. 선생님이 쓰시면 저 히말라야의 산도 조선의 산이 되고
러시아 아가씨도 조선 처녀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시인 중의 시인이시지요."
(병상에서 잠시 정신이 돌아왔을 때, 기자와 나눈 대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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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에서 마지막까지 의식을 잃지 않았던 노시인은 별도의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것에 휘둘리지 말고 먼 곳을 보는 대인大人이 돼라"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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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선생은 서정 시인이자 오줌이고 똥이고 가릴 것 없이 주물러서 시로 만들었던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문학평론가 윤재웅 교수
"그가 그토록 신들린 듯 눈부시게 노래했던 모국어와 시의 신화는 풍성하고도 영원한 선물로 우리에게 남겨져 있는 것이다" 시인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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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다녀가는 모든 이들의 마음에는 시가 절로 피어난다.
산과 바다가 보이는 미당시문학관 뒤편은 모두 시상詩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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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中)

우리말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시가 남아있는
미당시문학관에 잠시 다녀오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