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면 선운사]진흥굴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4.02.26
- 조회수 : 2072
삼국시대 불교가 국교처럼 성행했던 신라에서
제23대 법흥왕의 태자로 탄생한 아사달은 어릴 때부터 불도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어느날 꿈을 꾸었는데, 인도의 왕자로 탄생한 석가모니가 구중궁궐과 애처를 버리고 승려가 되어
몸소 고행을 하여 득도하고 불도를 중흥시켜 대성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후 자기도 이렇게 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 잠길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는 부친의 대통을 이어 왕위에 오르지 않으면 안될 신라의 법전에 따라 부득이 24대의 왕을 계승하기는 하였으나
나라 일에는 뜻이 없고 오직 불도에만 힘써 오다가 끝내는 왕위를 물려주고
평소 많은 시주와 관심을 가져온 선운사로 수도의 길을 떠났다.
진흥왕은 왕위를 떠나올 때 왕비와 사랑하는 중애공주를 데리고 선운사를 찾아 삭발하고 승려가 되었다.
진흥왕이 맨먼저 찾아온 곳은 지금 선운산의 사자암 앞에 있는 석굴로서 좌변굴이라 불렸는데,
후세에 이 굴의 명칭을 진흥굴이라 고친 것은 진흥왕이 친히 거처하며 수도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진흥왕은 승려가 된 후 이름을 법운자라 칭하고 사랑하는 공주 중애를 위하여 중애암,
왕비의 별호 도솔 이름을 따서 도솔암을 건립하고 이곳에서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제23대 법흥왕의 태자로 탄생한 아사달은 어릴 때부터 불도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어느날 꿈을 꾸었는데, 인도의 왕자로 탄생한 석가모니가 구중궁궐과 애처를 버리고 승려가 되어
몸소 고행을 하여 득도하고 불도를 중흥시켜 대성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후 자기도 이렇게 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 잠길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는 부친의 대통을 이어 왕위에 오르지 않으면 안될 신라의 법전에 따라 부득이 24대의 왕을 계승하기는 하였으나
나라 일에는 뜻이 없고 오직 불도에만 힘써 오다가 끝내는 왕위를 물려주고
평소 많은 시주와 관심을 가져온 선운사로 수도의 길을 떠났다.
진흥왕은 왕위를 떠나올 때 왕비와 사랑하는 중애공주를 데리고 선운사를 찾아 삭발하고 승려가 되었다.
진흥왕이 맨먼저 찾아온 곳은 지금 선운산의 사자암 앞에 있는 석굴로서 좌변굴이라 불렸는데,
후세에 이 굴의 명칭을 진흥굴이라 고친 것은 진흥왕이 친히 거처하며 수도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진흥왕은 승려가 된 후 이름을 법운자라 칭하고 사랑하는 공주 중애를 위하여 중애암,
왕비의 별호 도솔 이름을 따서 도솔암을 건립하고 이곳에서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