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면]개가리 장터 이야기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4.02.26
- 조회수 : 1930
조선조에 무장고을과 법성창을 연결하는 중간지점에 개를 낀 창촌이 있고 그 동남간에 당시에 크게 번성했던 개갑장터가 있었다.
그때 이 고장의 출천지효로 이름나 있는 영모당 김질은 안동김씨이며 1496년에 공음면 개가리에서 출생한 분으로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상과 조부모의 승중상 도합 12년간을 시묘살이를 한 분이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에 꿩고기를 몹시 좋아했기에
그는 매년 12월 제삿날에는 짚신을 삼아 그곳에서 8km나 되는 안자시장에 가서 짚신을 팔아 꿩을 사서 제물로 쓰곤 하였다.
어느해 눈이 많이 내려 시장이 서지 않아 제물을 구할 수가 없어서 크게 걱정하면서 그는 그의 불효로 인하여 하늘이 내린 벌로 알고
제삿날을 맞이하였다. 그런데 눈이 많이 내린 그날 석양 무렵에 갑자기 꿩 한 마리가 부엌으로 날아들어와 벽에 부딪쳐 떨어졌다.
김질은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그 꿩으로 제물을 삼아 제사를 모셨다.
그 다음 해에도 짚신을 등에 지고 눈길을 헤쳐 제물을 구하기 위하여 해리시장에 가는 도중
때마침 무장원님이 그곳을 행차하다가 김질의 모습을 보고 이 추운 날씨에 무엇 하러 가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원님은 김질의 효성이 지극함을 극찬하고는 그를 위하여 개가리에 장을 세워
평생동안 눈길에 저자를 보러 가는 고생을 덜게 되었다.
그 뒤로 퍽 성해 오던 개가리장터는 한일합방 후 구한말의 의병 활동을 위한 보급소와 연락처로 낙인이 찍혀
일본 사람들이 중앙지가 아니라는 이유를 내세워 끝내 폐쇄하여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그때 이 고장의 출천지효로 이름나 있는 영모당 김질은 안동김씨이며 1496년에 공음면 개가리에서 출생한 분으로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상과 조부모의 승중상 도합 12년간을 시묘살이를 한 분이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에 꿩고기를 몹시 좋아했기에
그는 매년 12월 제삿날에는 짚신을 삼아 그곳에서 8km나 되는 안자시장에 가서 짚신을 팔아 꿩을 사서 제물로 쓰곤 하였다.
어느해 눈이 많이 내려 시장이 서지 않아 제물을 구할 수가 없어서 크게 걱정하면서 그는 그의 불효로 인하여 하늘이 내린 벌로 알고
제삿날을 맞이하였다. 그런데 눈이 많이 내린 그날 석양 무렵에 갑자기 꿩 한 마리가 부엌으로 날아들어와 벽에 부딪쳐 떨어졌다.
김질은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그 꿩으로 제물을 삼아 제사를 모셨다.
그 다음 해에도 짚신을 등에 지고 눈길을 헤쳐 제물을 구하기 위하여 해리시장에 가는 도중
때마침 무장원님이 그곳을 행차하다가 김질의 모습을 보고 이 추운 날씨에 무엇 하러 가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원님은 김질의 효성이 지극함을 극찬하고는 그를 위하여 개가리에 장을 세워
평생동안 눈길에 저자를 보러 가는 고생을 덜게 되었다.
그 뒤로 퍽 성해 오던 개가리장터는 한일합방 후 구한말의 의병 활동을 위한 보급소와 연락처로 낙인이 찍혀
일본 사람들이 중앙지가 아니라는 이유를 내세워 끝내 폐쇄하여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